1940년대 초, 프린스턴 대학의 젊은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지도교수 존 휠러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파인만, 내가 알아냈네! 도대체 전자가 왜 다 똑같은지 말이야!”

“그야 전자는 다 똑같은 입자니까요.”

“아니야. 그것들이 전부 단 하나의 전자이기 때문이야!”

이것이 물리학 역사상 가장 기발하고도 대담한 아이디어 중 하나인 단일 전자 우주론(One-Electron Universe)의 시작이었다.


모든 전자는 왜 완벽히 똑같을까?

우주에 있는 모든 전자는 질량, 전하량, 스핀까지 소수점 끝자리 하나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동일하다.

특성 모든 전자의 값
질량 9.109 × 10⁻³¹ kg
전하량 -1.602 × 10⁻¹⁹ C
스핀 ½

우리 눈에 보이는 우주 전체의 전자 개수는 대략 10⁸⁰개다. 공장에서 찍어낸 동전도 자세히 보면 흠집이 다르다. 그런데 자연이 만든 입자가, 그것도 이렇게 수많은 입자가 어떻게 완벽하게 똑같을 수 있단 말인가?

고등학생을 위한 설명: 10⁸⁰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큰지 상상해보자. 우주에 있는 모든 모래알의 개수보다 훨씬 크다. 그런데 이 모든 전자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정확히 같은 성질을 가진다는 것이다. 마치 같은 금형에서 찍어낸 것처럼.


단일 전자 우주론: 실 하나로 천을 짜다

휠러 교수의 아이디어는 이랬다:

만약 어제의 전자와 오늘의 전자가 모두 같은 존재라면? 단 하나의 전자가 미친 듯한 속도로 시공간을 누비고 있다면?

이것을 비유로 설명해보자:

시공간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존재가
우주라는 거대한 천을 짜기 위해
바늘에 실을 딱 하나만 꿴다.

그리고 그 바늘로 시공간을 미친 듯이 찌르고 다닌다.
과거에서 미래로, 다시 미래에서 과거로.

우리가 보는 세상은 그 거대한 천의 단면일 뿐이다. 단면을 잘라서 보면 실이 지나간 자리가 수억 개의 점으로 보인다.

        시간축 (미래)
           ↑
           │    ●  ●     ●
           │  ●    ●   ●
    현재 ──┼──●──●──●──●──●── 공간
           │    ●  ●   ●
           │  ●      ●
           ↓
        시간축 (과거)

    각 ●은 "현재 시점"에서 관측되는 전자
    사실은 하나의 실이 시공간을 지그재그로
    지나간 단면일 뿐!

고등학생을 위한 설명: 4차원 시공간이 이해가 안 된다면, 2차원으로 생각해보자. 종이 위에 실을 여러 번 교차하며 놓으면, 위에서 내려다볼 때 여러 개의 점이 보인다. 하지만 그건 다 같은 하나의 실이다!


파인만-슈티클베르크 해석: 시간을 거스르는 전자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생긴다. 전자가 미래로 갔다가 다시 과거로 돌아오려면 방향을 바꿔야 한다. 그렇다면 시간을 거슬러 내려오는 전자는 우리 눈에 어떻게 보일까?

수학이 말해주는 놀라운 사실

입자 물리학의 수식에서 시간의 방향을 거꾸로 뒤집으면, 전자의 전하 부호도 뒤집어 플러스인 입자로 바꿔버려야 계산이 맞아떨어진다.

상황 입자 전하 시간 방향
원래 전자 - 미래로 →
시간 역전 양전자 + 미래로 →

수학적으로 “시간을 거슬러 가는 전자”와 “미래로 가는 양전자”는 동일한 사건이다!

이것이 파인만-슈티클베르크 해석(Feynman-Stueckelberg interpretation)이다.

고등학생을 위한 설명: 양전자(positron)는 전자의 반물질 버전이다. 전자와 질량, 스핀은 같지만 전하가 반대(+)이다. 1932년 앤더슨이 우주선(cosmic ray) 실험에서 처음 발견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고등학교 물리에서 배우는 속도-시간 그래프를 떠올려보자.

속도
  ↑
  │    /
  │   /
  │  /
  │ /
  └──────→ 시간

이 그래프에서 시간 축을 뒤집으면(거울처럼) 기울기의 부호가 바뀐다. 물리학의 많은 수식에서 시간 t를 -t로 바꾸면 다른 물리량들도 부호가 바뀌어야 일관성이 유지된다.

전자의 경우, 시간 역전전하 반전이 수학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CPT 대칭성이라는 물리학의 근본 원리와 관련된다.


단일 전자 우주론의 결정적 결함

휠러의 아이디어는 아름다웠지만,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만약 전자라는 실이 시간축을 따라 위로 갔다가 아래로 오기를 반복한다면:

  • 미래로 가는 실(전자)의 개수
  • 과거로 가는 실(양전자)의 개수

이 둘이 비슷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우주는?

입자 우주에서의 양
전자 매우 많음 (10⁸⁰개)
양전자 거의 없음

전자는 넘쳐나지만 양전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을 물질-반물질 비대칭성(Matter-antimatter asymmetry)이라고 한다.

쌍소멸(Pair Annihilation)

양전자가 희귀한 이유 중 하나는 쌍소멸 현상이다.

전자(e⁻) + 양전자(e⁺) → 감마선(γ) + 감마선(γ)

    e⁻  ●━━━━━╋━━━━━● γ
              ┃
    e⁺  ●━━━━━╋━━━━━● γ
           충돌점

전자와 양전자가 만나면 둘 다 사라지면서 순수한 에너지(감마선)로 변환된다.

고등학생을 위한 설명: 아인슈타인의 E = mc²을 기억하는가? 질량이 에너지로 바뀔 수 있다. 전자와 양전자가 만나면 두 입자의 질량이 100% 에너지로 변환된다. 이 에너지가 두 개의 감마선 광자로 방출된다.

만약 초기 우주에 물질과 반물질이 50:50이었다면, 둘은 태어나자마자 서로를 완벽하게 지워버렸을 것이다. 그랬다면 별도 없고, 행성도 없고, 지금의 우리도 없다. 빛만 가득한 텅 빈 우주만이 남았을 것이다.


파인만 다이어그램의 탄생

휠러의 아이디어는 틀렸다. 하지만 파인만의 머릿속엔 새로운 의문이 남았다:

“이게 단순한 공상이라면, 왜 수식이 그렇게 딱 떨어지는 걸까?”

파인만은 이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파인만 다이어그램(Feynman Diagram)을 만들어냈다. 현대 물리학의 가장 강력한 도구 중 하나다.

파인만 다이어그램으로 본 쌍소멸

기존 해석:

“전자와 양전자가 부딪혀 소멸했다”

파인만 다이어그램 해석:

“미래로 가던 전자선이 어느 지점에서 꺾여 과거로 향하게 됐다”

      시간
        ↑
        │        γ (감마선)
        │       ╱
        │      ╱
    ────┼─────●───────
        │      ╲
        │       ╲
        │        γ (감마선)

    소멸 = "선의 방향 전환"

소멸이라는 사건을 선의 방향 전환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등학생을 위한 설명: 파인만 다이어그램은 입자들의 상호작용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복잡한 수식을 직관적인 그림으로 바꿔서, 물리학자들이 계산을 훨씬 쉽게 할 수 있게 해준다. 파인만은 이 공로로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양자장론: 진짜 답은 무엇인가?

여기서 더 근본적인 질문이 남는다:

왜 입자라는 것이 선 하나로 표현되었다가, 어느 순간엔 반입자처럼 읽히고, 심지어 “사라졌다”라는 사건마저 방향 전환처럼 표현될 수 있는 걸까?

현대 물리학의 대답은 양자장론(Quantum Field Theory)이다.

입자는 바다의 파도다

양자장론에 따르면:

우주 전체에는 보이지 않는 "장(field)"이라는
거대한 바다가 출렁이고 있다.

우리가 "전자"라고 부르는 것은
그 거대한 바다의 일부가
잠시 뾰족하게 솟아오른 파도일 뿐이다.
개념 비유
양자장 우주 전체를 채운 바다
전자 바다에서 잠시 솟아오른 파도
태평양의 파도와 대서양의 파도 하나의 바다가 다른 곳에서 솟아오른 것

고등학생을 위한 설명: “장(field)”이란 공간의 모든 점에 어떤 값이 할당된 것이다. 예를 들어 온도장은 방의 모든 점에 온도라는 값이 있다. 전자기장은 모든 점에 전기장과 자기장 값이 있다. 양자장론에서 “전자장”은 우주의 모든 점에 존재하며, 이 장이 들뜬(excited) 상태가 바로 우리가 “전자”라고 부르는 입자다.


결론: 하나로 연결된 우주

결국 휠러는 틀렸지만, 동시에 방향은 맞았다.

휠러의 주장 현대 물리학의 답
모든 전자는 하나의 전자다 틀림 (양전자 수가 맞지 않음)
모든 전자는 하나의 근원에서 나왔다 맞음 (양자장)

내 손끝에 있는 전자와 저 우주 끝에 있는 전자는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물리적인 실이 아니라, 우주 전체에 퍼진 하나의 양자장이다.

1940년에 걸려온 엉뚱한 전화 한 통이 우리에게 남긴 것:

“그 모든 것의 근원은 결국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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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개념 정리

개념 설명
전자 음전하를 띤 기본 입자, 질량 9.109×10⁻³¹ kg
양전자 전자의 반물질, 양전하를 띰
쌍소멸 입자와 반입자가 만나 에너지로 변환되는 현상
파인만 다이어그램 입자 상호작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도구
양자장론 입자를 장의 들뜸으로 설명하는 이론
CPT 대칭성 전하(C), 패리티(P), 시간(T) 반전에 대한 물리법칙의 대칭성

참고 영상


이 글은 세모과학 YouTube 채널의 영상을 바탕으로 고등학생 수준의 추가 설명을 포함하여 재구성하였습니다.